'의식주' 파는 소(小)기업이 장수한다

생명 긴 기업의 DNA
日, 1000년 이상 기업 7곳… 세계서 200년 이상은 5586社
기술보다 신뢰 중요시… 경영에 적합한 사람에게 상속

최흡 기자 pot@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형석 기자 cogit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일본 오사카(大阪)의 건설회사 '곤고구미(金剛組)'는 올해로 창립 1430년 주년을 맞는다. 서기 578년, 일본의 쇼토쿠(聖德) 왕자는 사찰 건립을 위해 백제로부터 세 사람의 장인을 초청, 각각 하나의 사찰을 건설하도록 부탁했다. 이 중 한 사람이던 유중광(柳重光·곤고 시게미쓰)이 시텐노지(四天王寺)라는 사찰을 세우는 과정에서 만든 사찰 전문 건축회사가 바로 이 '곤고구미'다. 백제인이 창립한 이 회사가 현존하는 세계 최장수 기업이다.


한국은행이 14일 발표한 '일본기업의 장수 요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전 세계에는 창립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5586개사다. 특히 일본의 경우 창립 1000년을 넘긴 기업만 7개사에 달한다. 반면 한국에는 2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이 아예 없다. 100년 이상도 두산(1896년 창립)과 동화약품공업(1897년 창립) 두 개뿐이다. 기업을 장수하게 하는 DNA는 무엇일까.

①DNA 1: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의식주는 필요하다.

세계의 최장수 기업은 대부분이 의식주와 관련되는 기업들이다. 〈독일의 슐로스 요하니스버그(Schloss Johannisberg·768년 창립), 이탈리아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1106년 창립), 프랑스의 에그벨(Eyguebelle·1239년 창립)은 와인 회사이다. 이외에 음료·식품·가공식품·목공 등의 업종이 주로 최장수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교적 첨단 업종이 인쇄업 정도다. 불황이나 호황에 관계 없이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생필품 기업이 오래간다는 것이다.

②DNA2: 기술은 둘째. 고객 신뢰가 우선이다.

일본 실천경영학회가 2003년 실시한 '100년 장수기업 앙케이트'에서 장수기업들은 영업상 가장 중시하는 요소로 '거래처·고객의 신뢰'(복수응답 92%)와 '상품·서비스에 대한 신뢰'(82.2%)를 꼽았다. 기술력(69.6%)은 그 다음이었다.

기술 역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곤고구미가 건축한 고베(神戶)시 가이코인(戒光院)의 대웅전은 1995년 10만 채의 건물이 파괴된 고베 대지진에도 건재했다.

③DNA3: 곤충전략-작은 기업이 오래간다.

일본의 경우 창립 100년 이상 기업의 89.4%가 종업원 300명 미만 중소기업이었다. 기업이라기보다는 가문 대대로 이어가는 상점(商店)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당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일본의 장수기업들은 기업을 작게 하는 것이 오히려 존재감을 크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 존속할 수 있다는 '곤충 전략'을 구사한다"고 설명했다. 몸집을 크게 해서 생존하려 했던 코끼리는 결국 인도 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의 두 종류만 남게 된 반면, 몸집을 작게 해 생존하려 했던 곤충은 지구상 전 생물의 4분의 3을 차지한다는 논리다. 정후식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부국장은 "일본인들은 기업 덩치를 키웠을 때 닥칠 자금난 등의 문제에 대해 경계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④DNA4: 장자(長子) 상속보다 적자(適者) 상속

곤고구미 관계자는 장수의 요인에 대해 "큰아들 상속을 고집하지 않고, 가장 경영에 적합한 사람에게 회사를 물려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경우엔 당찬 여장부가 회사를 맡아 쓰러져 가는 회사를 일으켜 세운 일도 있었다. 이 회사는 2006년에 파산 위기를 맞았을 때 1428년간 회사를 이끈 곤고 가문도 물러났지만, 영업 양도 방식으로 결국 회사 이름만은 남도록 했다. 1625년 창업한 주류업체 '후쿠미쓰야(福光屋)'는 사업 계승을 형제 중 1인에게만 하고 나머지 형제·혈족은 기업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기업 내부의 경영권 분쟁을 경계하고 있다.

일본 장수기업 중 창업자 가족에 의한 동족(同族) 경영은 전체의 74.3%이며 나머지 25%는 창업가와 무관하다고 한은 보고서는 밝혔다.


장수(長壽)기업: 확립된 기준은 없다. 다만, 세계적인 비교를 할 때 쓰이는 장수기업 통계는 대부분 200년 이상을 기준으로 삼는다. 장수 기업 클럽인 에노키안 협회(The Henokiens Association of Family and Bicentenary Companies)도 200년 이상 된 기업만 가입할 수 있다. 에노키안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에녹'이 365년이나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입력 : 2008.05.14 21:29 / 수정 : 2008.05.14 21:30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름이 집값을 움직이는 구나  (0) 2008.06.13
- 400%  (0) 2008.05.22
창업  (0) 2008.05.01
블루 슈머 ?  (0) 2008.04.30
STP 전략  (0) 2008.04.27
by 끝없는 바다 2008. 5. 16.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