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어떤 마법으로 남이섬을 바꿨을까?
강우현 남이섬 사장
"구조조정? 80정년· 종신 직원도 있어요!"


우현석기자 hnskwoo@sed.co.kr

남이섬(나미나라 공화국)은 얼마 전까지 그저 그런 유원지였다.

기자가 81년과 2000년에 들렀던 남이섬은 전국 방방곡곡에 널린 그 흔한 유원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강물에 녹이 슬고, 물이끼가 낀 도선(渡船)을 타고 도착한 남이섬에는 곳곳에 소주병이 뒹굴고, 500원 짜리 동전을 넣으면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는 야구장과 성인 캬바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촌스런 배경 안에는 기타를 메고 MT를 온 것으로 보이는 대학생들과 불량스러워 보이는 중고생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우연찮게 들른 남이섬은 예전의 추레한 모습이 아니었다.

섬을 뒤덮은 노란 은행잎, 오색 단풍을 뒤집어 쓴 나무들, 갤러리 같은 호텔과 작업실은 기삿거리에 굶주린 기자의 침샘을 자극했다.

섬을 찾는 이들은 젊은 층에서 가족 단위까지 다양했고,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의 숫자도 적지 않아 보였다.

인터넷과 인터뷰를 통해 취재한 남이섬의 변화는 외양의 변신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1년 27만 명에 그쳤던 방문객은 2007년 162만 명으로 늘었고, 20억원에 그쳤던 매출은 100억원을 돌파했다. 매출과 순익의 규모는 조그만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하지만 무시해도 좋을 만한 투자에 비하면 그 성과는 놀라웠고, 무엇 보다 창의력이 빚어낸 다양한 콘텐츠가 기발했다.

입소문이 퍼지자 지자체와 기업들이 변화와 창조적 경영을 배우기 위해 남이섬을 찾았고, 지난해 강우현 사장의 강연을 듣고 간 연 인원은 1만 명에 달했다.

기삿거리는 변신한 남이섬이 아니라, 변신을 주도한 강우현 사장인 듯 싶었다.

강우현 주식회사 남이섬사장을 만나러 가는 날,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쏟아졌다.

약속시간을 11시로 잡아 놓고 9시에 서울을 출발을 했는데, 도로에 눈이 쌓여 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은 고사하고 당일 날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서 약속을 다른 날로 옮겨 보려고 남이섬에 전화를 했더니 ‘이미 기자를 만나러 서울자택을 출발을 했으니 예정대로 보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체인을 사서 자동차 바퀴에 감았다. 남이섬으로 향하는 길에 차들은 엉금엉금 기었고, 후륜 구동의 고급 외제차들은 비싼 몸값이 민망할 정도로 갓길로 나가 떨어졌다.

그렇게 쪼그라 붙은 간을 부여잡고 남이섬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난 오후 12시가 넘어서였다. 가을에 온통 노란 은행잎으로 물 들었던 남이섬은, 하얀 눈밭이었고 군데군데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인터뷰 장소에 도착하니 강사장이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집고 나타났다.

"사장취임 4년 만에 입장객 4배 고용 보장, 연봉은 매년 갱신 정주영회장이 경영학과 나왔나? 지출 보다 수입 많으면 되는거지" 상상력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예술가들 참여가 성공의 요인 카바레·노래방 없애버리고 갤러리·아트숍 등으로 면모 일신

-어쩌다 다리를 다치셨습니까.

▦얼마 전에 미끄러졌어요. 거의 다 나았는데, 또 넘어지는 바람에 다친 곳을 또 다쳤어요.

강사장의 첫 인상은 다리를 다쳐 거동은 불편해 보였지만 말이 빠르고 활력이 넘쳐 보였다.

-강사장께서 남이섬 사장으로 취임한 2001년 방문객 숫자가 27만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매출과 방문객은 얼마나 됩니까.

▦방문객 162만 명에 매출은 100억원이 넘었어요. 3년째 방문객 160만 명에 매출 1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동안 가파른 성장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중간 바닥을 다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6~7년째 성장 가도를 달려왔어요. 잘 나가는 기업들도 대체로 3년 이상은 성장을 이어가지 못한다고 보면 이 같은 숨고르기는 필요한 셈이지요.

게다가 관광산업은 이미지 산업이라 이미지가 한 번 실추되면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난 3년간은 매출이나 입장객 숫자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네트워크 강화와 문화행사, 저변 확대에 초점을 맞춰왔어요. 남이섬이 중장기적으로 30년은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 온거지요.

사전에 조사한 그의 경력은 디자인 회사을 운영하던 CEO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남이섬을 운영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남이섬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2000년 12월31일에 아들과 남이섬에 놀러 왔었어요. 그 때 받은 느낌은 '자연경관과 환경은 좋은데 관리가 안돼 있구나'하는 것이었어요. 안타까운 생각을 가지고 3일간 머무르면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어요. 그런데 마침 남이섬 대표이사와 주주들이 왔길래 그 분들과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과 장점이 많은데 왜 방치하고 있냐'고 했더니 그 분들이 작업장을 하나 내주면서 여기서 한번 지내보라고 하더군요. 그걸 고치고 다듬고 하면서 남이섬에 머물렀어요. 그런데 남이섬을 찾은 방문객들이 우리 집 앞에만 몰려들고, 사진을 찍어 대고 그러는거라.

그러다가 그해 7월쯤에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그 분들이 '차라리 남이섬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장을 맡아달라'고 제안을 해왔어요. 그래서 내가 조건을 달았지. 최소 1년 간은 간섭을 하지 말아달라고. 대신 월급은 100원만 받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남이섬의 매출을 1년 안에 두 배로 늘려 놓겠다고 했지. 그리고 매출이 40억원을 넘으면 초과분은 내가 갖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내가 사장을 맡은 첫 해에 매출은 40억원을 훨씬 넘었어요. 물론 월급을 100원만 받지도 않았고, 40억원 초과분을 내가 가져 가지도 않았지. 그 분들이 남이섬을 나에게 맡긴 의도는 단순했어요. 남이섬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다, '디자이너가 사장을 맡으면 신문에도 나고 홍보도 될 거 아니냐'고 생각한거 같아요.

-미술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이섬 사장에 취임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캐릭터, CI등을 취급하는 디자인회사를 하고 있었어요. 관광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었지요.

-강사장께서는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로 세상에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날 남이섬이 이렇게 바뀐 것은 사장님의 창조적 발상 때문입니까. 아니면 경영자적 자질이 큰 몫을 한 겁니까.

▦나는 일반 기업의 CEO들 하고는 계산 방법이 달라요. 사실 기업 경영이라는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처럼 단순한 문제거든. 정주영 회장이 경영학과 나왔나? 예수가 철학 전공해서 인류 구원하게 된 건 아니거든.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감동하는 거나, 남이섬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 받는 것은 같은 이치거든.

나는 경영이라는게 그냥 나가는 돈 보다 들어오는 돈이 많으면 되는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시각으로 보면 정치나 경영이나 결국은 디자인이요. 남이섬 경영에도 그런 생각을 그대로 적용했어요. 내가 취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했지. 구조조정이라는게 사람을 자르는 것만 구조조정이 아니잖아요. 내가 생각한 구조조정은 고용을 늘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사람을 더 뽑는 구조조정을 했지. 참, 그거 알아요? 우리 남이섬주식회사는 종신 직원도 있어요.

-종신 직원은 몇 살까지 근무하나요.

▦일반 직원들은 55세가 정년이고, 정년이 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사위원회를 열어서 임원평가와 다면평가를 거쳐 결정해요. 그 중 일부는 정년을 80세까지 늘려줬고, 80세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월 80만원을 주기로 한 사람이 4명이에요. 정년을 보장해주니 확실히 내부 조직이 안정되고 있어요. 조직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도 장점이고.

-직원들의 긴장이 이완되지는 않나요.

▦우리 직원들은 고용은 보장되지만 연봉은 해마다 갱신하는 계약직이에요. 올해 연봉 계약은 이미 마무리됐어요. 연봉계약에 앞서 직원 들이 서로 다면평가를 해요.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은 전년 보다 최고 25%를 더 주고, 나쁜 평가를 받은 사람은 10%까지 깎도록 돼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7%만 적용시켰지.

또 우리회사는 평생을 보장하는 대신 직급이 평사원과 팀장 둘 뿐이에요. 이유는 장기적으로 먹고 살게 해주기 위해서예요. 연공서열 따져서 임금 주고 퇴직금 주면 다 망해요. 그래서 55세까지는 임금을 계속 올려 주고, 그 이후에는 55세 급여의 80%로 정년까지 가는 거야. 정년 때 200만원 받았으면 여든이 돼도 160만원을 받는 거지.

-남이섬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벤치마킹 하러 오는 지자체나 공무원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고 하던데, 얼마나 됩니까.

▦내가 작년에 교육한 사람이 1만 명쯤 되요. 지자체는 한 달에 10곳 이상은 교육을 받으러 와요. 공무원들 입장에서 볼 때는 남이섬이 단기간에 바뀌고 있다는 게 배울 점이고, 아무 것도 없는데서 시작했다는 것도 배울 점인 것 같아요. 경기도는 김문수 지사가 한번 와보고는 산하 공무원들은 다 다녀오라고 지시를 해서 다들 다녀갔어요.

-새해에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나요.

▦연초에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상'에 남이섬 서울센터를 냈어요. 이제는 남이섬을 서울로 들고 나가서 세일즈를 할거요. 인사동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운행할 계획이고. 또 해외거점도 마련할거예요. 그 거점들은 밖으로 나가는 거점이 아니라 밖에서 남이섬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거점들이 될거예요. 베이징 나미나라(남이섬의 다른 이름)도 이미 운영중이에요.

지난해 11월 7일 베이징에서 국제창의(創意)엑스포를 개최했는데 35개국+1개 나라(나미나라)가 참가했어요. 중국이 나를 총통자격으로 초청해서 귀빈실로 입국을 시키더라고. 남이섬의 창의성에 걸 맞는 대우를 해준거지. 그래서 주(駐)중국 남이섬 대사도 임명하고 왔어요. 다 엉터리 같고, 장난 같은 동화적 상상이지만 거기에 디자인을 덧 입히면 현실이 되는 거예요. 요즘 상상경영, 창조경영, 청개구리 경영 등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나는 몇 년 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상상만 하지말고, 구상(디자인)을 해야 구체화하는 거에요. 상상만하면 공염불에 그치는 거지 뭐.

-얼마전 관광공사 오지철 사장을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기된 문제들 중 하나가 관광지와 지자체의 관광객 수용태세였습니다. 지자체나 공무원이 마음만 먹으면 강사장께서 남이섬을 바꿀 때 들인 노력 보다 수월하게 관광환경을 바꿀 수 있을거라고 생각되는데 동의하십니까.

▦어! 오지철 사장이 관광공사로 갔어? 그 양반 참 괜찮은 분인데. 서울 가면 안부 좀 전해줘요. 그건 그렇고. 그건 힘들거에요. 이유는 공무원들이 우리 보다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에요. 우리 같은 아티스트들은 상상하는 걸 말할 수 있고, 그림으로 그릴 수 있지만, 공무원이나 일반인들은 그게 쉽지 않아요. 우리 처럼 관광지를 꾸미려면 지자체에서는 용역을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관료들 스스로 디자인 한 것을 손으로 메만질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봅시다. 남이섬은 유원지 시설, 놀이시설 다 없앴어요. 관광객들이 캬바레나 노래방에서 놀려고 남이섬에 오는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일반인들은 그게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큰 문제야.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없는 곳에는 가지 않아요. 요즘 한류 타령들 하는데 나는 3년 이상 못 간다고 봐요. 그래서 겨울연가 관련 조형물들은 2년이 지나면서 치워버렸어요.

관광객들이 그걸 계기로 왔지만 남이섬은 찾아올 때 마다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그게 어마어마한 시설이어야 되냐? 그럴 필요는 없어요. 들어오다 남이섬 입구에 얼음분수 봤지요. 그냥 분수를 얼려서 만든거에요. 창조적 재활용을 한거지.

-기사에서 보니까 남이섬 곳곳에 설명 간판이 없는 것은 직원들에게 직접 물어 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했던데, 누가 직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건 설명 간판을 미처 못 만든 것도 있고…. 그렇지만 여기 컨셉은 자유예요. 아닌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은 간섭하는 걸 좋아해서 내가 사장이라는걸 아는 사람은 이런저런 참견을 해요. 그런 사람들은 이미 남이섬이 가슴속에 들어와 있는 거지. 나는 그 사람들 마음의 60%만 채워주는 거야.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방문자들의 몫이예요.

-남이섬을 찾아 오는 관광객 중 외국인과 내국인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지난해 방문객 162만명 중 18만5,000명이 외국인이었어요. 비율로 보면 11%정도지요. 외국인이 10% 넘는다는 건 굉장한거예요. 입장객 수로 보면 대만,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순인데 일본은 추정치에요. 瞿?사람들은 더 이상 깃발 따라서 다니는 관광은 하지 않기 때문에 집계가 안돼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방문객도 마찬가지고. 그 숫자까지 따지면 20만 명이 넘을거라고 봐요. 내셔널데이(특정 국가 기념일을 남이섬에서 거행하는 행사)에 한 번 왔던 사람들은 스스로 가이드가 되서 자기 나라 사람들을 또 데려오더라고.

-남이섬이 이렇게 자리를 잡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남이섬이 안정적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티스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얼마 전까지는 남이섬이 관료들의 운영에 따랐지만, 이제는 아티스트 중심으로 가고 있거든. 아티스트들의 기여도가 높은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남이섬에서는 아티스트가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조경이 들어가고, 건축이 들어가고 하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돼요.

-남이섬을 이만큼 바꾸어 놓았으니, 다른 욕심은 생기지는 않습니까.

▦남이섬이 잘 나가니까 내가 섬 전문가인줄 알고 맡아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비슷한 유형의 관광지들을 연방공화국으로 묶을 생각이요. 산정호수, 평강식물원, 베이징 나미나라, 프랑스문화원 등 여러 관광지들을 묶어서 나미나라 여권 하나로 관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거예요.

지난 가을 기자는 가족들과 함께 남이섬을 찾았었다. 그 때 남이섬 바닥은 온통 송파구에서 가져온 노란 은행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속절 없이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은 불 속으로 스러져 가고 있었다.

-올 때 마다 새로운 볼거리가 생겨납니다.

▦서장대(진주성 서문의 지휘장대,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6호)가 불타고 난 다음 타고 남은 목재를 사왔어요. 낙산사의 불탄 목재도 사왔고. 그걸로 똑 같은 서장대 낙산사를 만들거요.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이 되는거지. 난 불이 났다든지, 무슨 건물이 무너졌다는 소리만 들으면 직원들에게 무조건 가서 주워오라고 해. 버려지는 역사들의 잔재를 가져와서 역사와 문화의 흔적으로 전환시키는거야. 중앙청 기단 돌 하나만 있으면 남이섬에 일본관광객 1,000명을 불러모을 자신이 있어요.

-관광지가 바뀌어야 할 점도 있지만 관광객이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광객을 수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관광객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우리 국민의 민도가 낮지도 않지만 높다고 볼 수도 없어요. 한국에서 문화인의 기준은 줄잘서고, 침 안 뱉고, 소변기에 다가가서 오줌 누면 끝나요.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거든. 아무리 관광지가 좋아도 관광객이 진지하지 않으면 안돼요. 일본인은 남이섬에 와서도 메모를 해 가지고 가요.

한국인은 설명판이 없다고 불평을 하지만 막상 만들어 놓으면 안 읽고 그냥 가요. 중국인들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중간 정도예요. 남이섬에는 TV도 없고, 노래방도 없어요. 밤이 되면 섬에 묵는 관광객들 중에는 '노래방 어딨냐'고 묻는 이들도 있어요. 그러면 나는 '그런 것 없으니 책읽고, 도자기 만들라'고 하지. 하지만 관광객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씩 진지해側?있는거지.

-남이섬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제일 걱정은 직원들이 '우리 회사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거예요. 영속성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우리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해요. 국제 행사들이 꽤 많은데 우리 직원들이 다 해내요. 비결은 다른게 없어요. 음식을 예로 들면 방문객이 세계 어디서 오든지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주면 될 거 아니냐는 단순 소박한 마인드로 해결하거든.

작년 5월 한달간 22개국 대사가 다녀갔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 그래서 하는 얘긴데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정부에서는 자꾸 외국에 나가잖아. 그런데 그게 아녜요. 한국관광이 돌파구를 찾으려면 외국 나가서 엑스포할게 아니라 여기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 나가서 출장비만 까먹을게 아니라 그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맛을 보여줘야 해. 아니, 사진 보고 한국 올 사람이 누가 있나? 내가 당국자가 된다면 다 바꾸고 싶어.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가는 중에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실에 들렀는데 한 여직원이 먹으로 화선지에 윷판을 그리고 있었다. 강사장은 그걸 보더니 "이리 줘 봐. 이렇게 하면 좋지 않아?"하고 자기가 막 그렸다. 그게 못 마땅 했는지 그 여직원은 "아유. 사장님 그게 뭐예요."라고 투덜댔다.

밖에는 여전히 눈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는 목발을 내던지고 절뚝 거리며 포즈를 취했다. 그는 취재 전 "4시에 서울에서 약속이 있다"고 했는데 이미 시간은 3시를 넘고 있었다. 비서와 홍보업무를 겸하고 있는 여직원이 "사장님 빨리 가세요. 늦겠어요"라고 졸라대 듯 말했다. 직원들이 강사장을 대하는 태도가 딸이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는 듯 했다. 강사장은 귀찮은 듯 "그래. 알았어"라고 대답은 했지만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점심도 굶고 눈길을 4시간이나 달려와 취재를 하던 기자는 그런 그의 열성에 감읍할 뿐이었다.

◇약력

▦ 1953년 단양 출생

▦ 홍익대학교 그래픽디자인 학사

▦ 홍익대학교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 석사

▦ 경희대학교경영대학원 노사인력관리학 석사 수료

▦ 98 제51회 프랑스 칸영화제 공식포스터 제작자 선정

▦ 99 디자인미술관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 2000 알씨컨텐츠 대표이사

▦ 2001 남이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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