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즐거워" 노건축가의 유쾌한 반란

68세에 서울시 신청사 디자인 공모에 당선된 유걸씨........현장에서.

18일 발표된 서울시 신청사 디자인 공모 당선작은 그 파격적인 청사 모습도 눈길을 끌지만, 당선작의 주인공이 68세의 노장이라는 사실도 못지않게 화제다. 주인공은 건축가 유걸(아이아크 대표)씨다. 나이든 건축가들은 현상공모전엔 작품을 잘 안 내는 게 '상식'이다. 젊은 후배들과 경쟁해 탈락하면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씨는 그런 관행쯤은 보란 듯 깼다. 그는 "심사만 하는 것보다 경기에서 뛰는 게 훨씬 재미있어 나섰는데, 이렇게 결과까지 좋게 나오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유씨가 디자인한 작품도 파격성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15일 열렸던 서울시 신청사 디자인심의위원회 최종 심사장. 유씨는 "서울 도심을 둘러싼 북한산과 인왕산의 수직적인 모습과 조화를 이루려면, (서울시 신청사는) 수평적인 공간이 돼야 한다"며 가로가 세로보다 더 긴 모양새의 디자인을 제시했다. '관청 청사란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은 마천루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버렸고 심사위원들은 이 '파격'을 선택했다.

유씨에게 서울시 신청사 디자인 공모는 유쾌한 '복수전'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조성되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 디자인 설계 현상공모에도 참여했지만, 이라크 출신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 밀렸었다. "그 영국 건축가의 파트너가 이번 설계 공모전에 같이 참여했다가 나한테 밀렸으니 내가 빚을 갚은 셈이죠?(웃음)"

유씨는 "새로운 시청 건물은 시청 앞 서울광장처럼 편안하고 누구나 쉽게 찾는 곳이 돼야 한다"고 했다.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해도 고층건물보다는 역·터미널같이 옆으로 넓은 건물에 발걸음이 한결 편안해지지 않으냐"고 그는 되물었다.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인 그는 1965~70년 김수근건축연구소에서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고 김수근씨와 작업을 했다. 이후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형태미보다는 '환경과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건축물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응모자'였지만,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의 행정타운 설계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디자인 공모에서는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는 40여 년의 건축가 삶에서 가장 뿌듯했던 작품으로 1997년에 작업한 강남구 일원동의 자폐학생 학교인 '밀알학교' 설계를 꼽았다. 이 건물도 고정관념을 깨고 자유롭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는 "장애를 가진 학생이라도 특별히 뭔가를 더 만들어주지 않고 일반학교와 똑같이 꾸몄고, 대신 학교 현관을 실내 광장 같은 수준으로 널찍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동네 주민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법정소송으로 갔는데, 반대하던 주민들이 판사로부터 크게 꾸중 듣더군요.(웃음)"

건축물에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믿는 그는 이번 신청사 설계에서도 널찍한 실내 광장인 '에코 플라자'를 포함시켰다. 유씨는 "3월 본격 공사에 들어가면 완공되는 그날까지 거의 매일 공사장에 출근하다시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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